창간취지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술 언론의 모습은 다양해보이나, 미술을 미술계 사건들의 나열로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파편화된 개별 사건만 존재하고, 사건들 사이의 연관이나 흐름은 안중에 없게 되었다. 또 예술의 가치를 공평무사한 정보로 취급하거나 다수가 선호하는 미술 작품을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가한 결과, 예술에 관한 상투어와 신화가 난무하고 있다. 새 저널 <볼>은, 미술을 치열한 가치경쟁의 장이 되어야한다고 보고, 다른 무엇보다도 동시대 미술의 정신적 흐름을 만드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볼>은 미술을 안팎이 열려있는 하나의 ‘장소’로 정의한다. 미술과 시각문화는 제한된 전문영역이나 교양인의 호사취미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주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장이다. 시각문화는 물론이고, 현대미술 자체가 이미 삶의 다른 영역과 뚜렷한 경계를 두지 않고 있다. <볼>은 국내에서는 이제 태동하고 있는 미술과 시각문화간의 학제간 연구, 새로운 상상력이 펼쳐질 본격적인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는 미술 밖의 영역을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배경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미술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격상시키고자 한다.

새 저널이 다루는 영역은 ‘미술과 시각문화’이다. 시각문화는 산업과 결합하여, 대중의 감수성을 조직하는 현대의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이다. 문화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이미 가장 전위적인 미술의 전통조차 흡수하고 있으며, 미술이 오히려 대중문화를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술이 시각문화의 ‘자기인식’으로서, 개념과 감각 세계에서 문화의 정점을 차지하려는 어떤 야심적인 태도나 역사적인 경향으로서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하고자 한다. 시각문화 비평은 미술의 탈신비화에 기여할 것이다. 한편 대중 시각문화에 대한 리터러시를 높이고 비판적 거리두기(critical distancing)를 위해서도 우리 문화에 특히 결핍되어있는 비판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의 심화와 진흥은 매우 절실하다.

토픽 중심으로 짜여지는 새 저널은 또 우리 사회와 문화예술의 블랙박스를 과감히 열고자 한다. 한국 사회 문화의 무의식이 햇볕으로 나오지 않는 한, 근대화든 탈근대화든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 전통은 또 다른 블랙박스이다. 단원과 겸재의 그림은 보물이 아니라 한국미술의 무의식이다. 만화의 역사는 새로 쓰여야하며, 영화비평은 대상을 넓혀야한다. 북한과 만주에 대해 읽을 것이 거의 없다.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동구와 중동, 남미와 아프리카,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문화예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새 저널이 사용할 언어에 관해서이다. 우리는 구조를 꿰뚫는 이론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정교한 새 이론의 창설을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창조적인 자극과 지적 도발의 생산성을 중시하려한다. 인문학적 바탕이 매우 부실한 한국 미술에서, 교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교양과 사대적 교양주의를 구분하고, 유학파 아카데미즘보다 국내파 ‘실학’을 높이 살 것이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새 저널의 주요 관심사이다. 국영문을 병기倂記하고 해외필진을 개발하는 것에 더하여, 서구미술에 대한 한국미술의 고질병인 ‘선망의 정치’를 벗어버리고 수평적인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한다. 우리의 실천을 해외에 밝히고, 서구, 아시아, 제3세계의 다양한 문화 예술 전략과 기획을 소개할 것이다.

<볼>은 ’볼 것’의 준말이 아니라, ’보고 싶은’이나 ’보아야 할’의 준말에 가깝다. 또 보고 싶은 미술이나 영화보다는, 보아야 할 미래가 더 좋겠다. 지금 여기서 보아야 할 미래를 위해, 새 저널에 많은 관심과 참여, 비평을 기대한다.

볼 편집위원회

인미공저널 계간「볼」은 동시대 미술의 시, 공간적 맥락을 만들어 내기 위해 미술과 시각문화의 인문적 지평에 대해 토론한다.

「볼」은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교차-학제적 접근을 통해 작가와 평론가, 미술현장과 일반대중의 건설적인 소통을 기획한다.

「볼」은 또한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여 우리 미술의 제 상황을 다른 문화권과 공유하며, 해외 주요 필자의 글을 게재하는 한편, 해외 필진의 DB를 계발하는 등, 범 문화권 차원의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미술문화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인미공의 활동의 모든 과정과 병행하는 인미공 출판은 인미공 아카이브, 인미공 프로덕션, 인미공 워크숍의 국영문 혼용 도큐멘테이션을 온오프라인으로 확장, 유통하며, 이를 통해 역사적 기억을 축적하고 수평적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